2026년 2월 13일 금요일

그 외 몇가지 단상들 ─ 초(超) 가구야 공주! (3)

 

본작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게 작년 11월 8일이다. 왜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냐면 유튜브에서 티저 트레일러 본 기록을 뒤졌거든. 그 때는 보카로P 라인업 보고 뭐? 이 라인업 뭔데? 하고 어이없어 하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코가 꿰일 줄은 몰랐지. 처음 나왔을 때 살까? 괜찮아 보이는데? 하고 판정만 해 두고 4년을 미루다가 올해에야 산 사일런트 위치도 그렇고 뭔가 괜찮은데 미루다가 피 보는 일이 자꾸 생기는 느낌이네.


게이밍 전봇대라니 머리털 나고 생전 처음 듣는 단어조합인데스케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야. 혹시 이 게이밍 전봇대를 후시가 구전해주는 과정에서 대나무가 된 걸까. 그러면 사실 게이밍 전봇대야말로 근본 중의 근본인 걸까. 나 갑자기 뇌 아파.


후반 야치요가 회상을 하던 중, 화면 상으로 지나가는 장면들. NIFTY-Serve, 개인 홈페이지, 2ch가 차례대로 배경처럼 흘러가는 장면이 있다. 정말 인상 깊었던 파트. 달 너머에서 무언가가, 월인이나 정보생명체들이 우리의 거대한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면, 그 중 딱 하나, 이 제멋대로인 달나라 공주님이 통신회선 속 우리의 작은 세상에 뛰어들어 긍정해 준 것만으로도...


ray MV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배개를 껴안은 카구야를 많이 꼽는데, 나는 아무래도 폐허 속에서 바닥없는 절망을 느끼는 표정의 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니 인상적이라고 할까 그 시대를 지나가는 카구야 이야기 조금만 듣고 싶은데. (이 이야기 다른데서 한 뒤에 니도 참 특수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하하, 제가 좀. (시발) )


미소녀 그려놓고 가차없이 표정 구겨버리고 망가트리는 개그 연출이 영화 시작 2분만에 바로 터지고 그 뒤로도 심심찮게 구겨버리는데, 꽤 좋다. 오히려 덕분에 캐릭터에 인간성이 붙는단 느낌이다. 


히로인 분양 맹키로 마미라이 같은 걸 획책하는 우결충무브를 쳐볼까도 생각했는데 지금 나무위키 켜보니까 마미에겐 남친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애니플러스 서면점에서 초 카구야 굿즈 중에 라이 혼자만 끝까지 남아있었던 건 이유가 있었던 거지... (나빴다)


아니 근데 그러면 얼굴 제대로 나온 헤테로 커플이 없다 이 애니. 마미 남친은 얼굴도 안 나오고 이로하 아빠도 얼굴이 안 나오고... 헤테로 보고 싶으면 나가서 불량연애나 보라는거야? 뭐... 그러시죠.


최종반, 이로하가 카구야의 몸을 다시금 만들어 야치요가 카구야로서 다시 재회한다는 전개는 꽤 기시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나 뿐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도라에몽의 IF 결말을 그린 모 유명 동인지를 떠올린 모양이다. 


이 쯤에서 싸울 때 되지 않았나? 않았나? 할 때마다 안 싸우고 넘어가다 보니 n회차 넘어갈 때마다 이게 쌓여서, 감정적으론 꽤나 무거운 스토리인데도 생각보다 꽤 가벼운 맘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일단 당장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다시 또 돌려보다 보니 하루 몇 시간만 자고 밤샘도 밥먹듯이 하는 생활패턴으로는 이로하 얘 오래살기 글렀다는 생각도 역시 드는 게... 진짜... 젊다 못해 어리니까 저러고 버틴다 싶은 생각도 드는거지... 10년 후에는 쉬는 것도 일이랍니다 하면서 쉴 때는 쉬는 인간이 되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만... 아니 뭐 진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라니 나도 나이 먹긴 했구나... 아 물론 전 올해도 15살입니다.


reply 라이브 장면에서의 카구야의 독백, "있잖아, 이로하 이로하가 너무 예뻐서 첫눈에 좋아하게 됐어(ねえ 彩葉 彩葉の表情(かお)がとてもきれいでさ 私すぐ好きになったんだ)가 영어 더빙판에서는 You're more beautiful than you know로 번역됐다. 처음 듣고는 아주 괜찮은 번안인데! 하고 감동도 했는데 일주일 정도 곱씹어보니까 작품을 다소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번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함께 들고.


최후반, 후시가 보여준 8천년을 엿보고 실신한 이로하가 아침의 바다 같은 곳에서 눈을 뜬 이유는 일종의 수미상관이며 또한 선언이 아닌가 싶다. 이 공간은 초반 카구야가 처음 츠쿠요미에 로그인할 때의 그 공간,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옵니다" 할 때의 그 공간으로 추정된다. 설정적으로는 기억을 엿본 이로하가 버티지 못하고 실신하자 후시 혹은 야치요가 강제로 셧다운을 시켰다가 다시 로그인을 해서 로그인 공간으로 돌아온 거라고 할 수 있을거다(바다 같은 곳에서 눈을 뜨기 직전에 로그인 내지 츠쿠요미 기동 연출이 뜨기도 하니까). 

또한 스토리적으로는... 츠쿠요미란 결국 야치요=카구야가 이로하와 다시 만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니, 이로하가 야치요=카구야와 재회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한 시점에서 츠쿠요미는 (이미 닿아서 역할을 완수했으니 더 이상 부르지 않는 Remember와 마찬가지로) 이로하와 만나기 위한 역할을 완수했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고, 그래서 처음과 달리 츠쿠요미로 들어가는 토리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된 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온 것이 츠쿠요미이므로, 이 맥락에서 보면 밤=츠쿠요미의, 시간=역할이 끝났으므로 아침이 오는 것도 당연하다.

VR 세계에 대한 스토리의 무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선언이란 점에선 본작과 마찬가지로 VR과 팝 컬쳐를 소재로 삼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엔딩─전설의 사다리 걷어차기 엔딩─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여기서는 훨씬 은유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쪽과는 스토리 전개 자체도 판이했고. 


지금 시점에서 제목을 다시 읽어보면, 여러가지 한자 중에서도 굳이 초(超)라는 단어를 택한 것은, 새드엔딩이 당연한 카구야 공주 이야기를 뛰어넘어 그 너머의 해피엔딩을 거머쥠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정말이지, 내 2월 한달을 죽도록 불태운 영화였다. 아직 다 불탄 거 같진 않지만...

2026년 2월 12일 목요일

그리고 조금 더 ─ 초(超) 가구야 공주! (2)

 

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각본 측면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지않다. 그걸 무수히 많은 작화 종이로 덮어버리는 비주얼 차력쇼 영화라고 해도 된다. 아닌게 아니라 최후반 직전의 가짜 엔드카드는 스토리가 다소 급전개를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전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면 갑자기 작곡을 시작하더니 갑자기 야치요가 팔천년짜리 썰을 풀고 갑자기 10년 뒤가 되어 버린다고 느낄 수 있다.


비주얼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내 나름대로 영화의 소재가 된 세 가지 축을 분해해 본다면, 일본 SF, 버추얼 유튜버, 백합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산문문학인 타케토리모노가타리를 기반으로 완성도 높은 메타버스나 VR을 이식해내고 후반으로 가면 부트스트랩 패러독스를 통해 스토리 전체를 궤뚫는 축을 만들어냈다. 현실 속에 한 방울의 특이함을 섞어 Sukoshi Fushigi라는 일본 SF의 기반이 되는 후지코 F. 후지오의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의 핵심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정체불명의 AI 유튜버 루나미 야치요가 있는데, 이는 하츠네 미쿠와 키즈나 아이를 결합시킨 듯한 사회적 포지션이다. (더불어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내용을 고려해보면 타케토리모노가타리에서의 천황 포지션도 일부 가져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버추얼 유튜버의 세계에서 천황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게 니지산지의 중심인 츠키노 미토라는 것도 재밌다. 하필 츠키노 미토라는 이름. 우연일까? 아닐까? 사실 나도 반쯤 끼워맞춘 거다만.)


그리고 백합. 이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 아 진짜 돌겠네 씨.

솔직히 나름대로 백합을 퍼먹을대로 퍼먹고 다닌 입장이다 보니 백합물을 보면 만족이나 깊은 만족이나 아악진짜으흐흐흐흐 같은 건 있어도 막... 그 뭐라고 해야하냐... 거대감정에 깔려서 버둥거리며 고통받는 그런... 아니 이렇게 써 두니까 내가 무슨 매저키스트 같잖아. 아무튼 그런 건 잘 없다. 백합물 보면서 그런 감정 마지막으로 받아본 게 언제지? 꽤 까마득한데. 

처음 이걸 다 본 직후에는 음~ 꽤 만족스러웠어요~ 하고 감상문 하나 던져놓고 끝이었는데, 뭔가 이게... 그 뒤가 점점 커진다. 꽤 만족스러운 작품을 보고 나면 작품세계 밖에 날 던져두고 삶은 계속 흘러간다... 날 저 세계에 다시 들여보내다오... 하는 그런 우끼끼한 시점이 있는데 그게 뭔가 점점 커진다... 여운 같은 얌전하고 아름다운 게 아니라, 여진이나 후유증에 가깝다. 그러니까 Reply랑 ray를 끝없이 다시 돌려들으며 정신병 점점 심해지고... 

그래, ray. 이거 본 시점에서 꽤 세진 거 같다. 본편에 들어가지 않은 추가 컷들이 몽타주처럼 지나가면서 초 카구야 세계에 대한 갈구가 더 증폭되고... 후일담을 보여달라며 트위터 등지를 떠돌며 2차 창작을 뒤지고... 먹을 거 없으면 다시 본편 처음부터 보고... 유튜브 공식 채널 뒤져보고... 또 좀 모였냐 하고 2차 창작 뒤지고... 정신병은 심해지고...


이러다 정신병원에 끌려가기 전에 다시 스토리 얘기로 돌아가 보겠는데. 가짜 엔드카드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꽤 우악스럽다는 평을 할 만 하다. 게이밍 전봇대로 시작해 주변 상황에 휩쓸리는 게 주였던 이로하가 하고 싶은 것을 마침내 찾아내고 그걸 붙잡기 위해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하기 시작하며, 그 끝에 마침내 진실에 도달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선언하며 그 너머로 달린다(이 부분을 좀 자세히 보여달란 말이다 야마시타 사악한 자야). 여러 차례 언급한 키워드인 "해피 엔딩"을, 꽤 억지스럽게 뜯어낸단 느낌이 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취향이다.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다시 만났으니 감사해용~도 아닌, 진짜 만족할 때까지 달린다는 그 우악스러움이. 나는 어떻게든 너와 함께 행복해져야겠다며 뛰쳐나가는 그게. 

그래서 이 억지스러움은 작품의 완성도를 낮췄을지도 모르지만, 완성도가 아닌 내가 느끼는 만족도는 정말 더없이 높아지는데 중요한 조각인 거다. 

그러니까 난 초 카구야 공주!가 스토리까지 완벽하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딱히 그렇진 않다는 것도 (일단 머리론) 알고,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거니까.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우리의 시대는 이런 것 또한 남긴 것이다 ─ 초(超) 가구야 공주! (1)

엄혹하다. 한 걸음만 엇나가도 바로 굴러떨어질 혼돈 일보직전의 시대이다. 

이 순간를 살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바로 한 달 뒤의 내가 비웃더라도 이 순간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창백하고 푸른 점 위에서 그나마도 얼마 되지도 않는 티끌만도 못한 것을 갈라먹고 있는 소위 권력자라 불리는 이들은 강대강의 치킨 게임을 이어간다. 폐허 뿐인 평화란 그나마 있지도 않고, 세상을 둘러보면 전쟁 중이거나 전쟁 직전의 험악함 뿐이다. 세상을 끝없이 갈라놓는 이런 권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그 뒤편의 민의라고 하는 것이며, 그 민의라고 하는 것은 숫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보는 시대는 증오와 분노로 움직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오십 여 년 전부터, 구리선들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작은 세상과 세상을 서로 맞잡아 이을 때, 우리는 우리가 그물망처럼 이어져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하고, 비로소 궁극의 이해와 그 너머의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오십 여 년, 통신망을 타고 자라난 것은 이해와 평화가 아니라, 더 작은 세상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라난 증오와 분노다. 더 빠르고 방대한 통신망을 통해 우리는 우리 너머의 세상에 대해 더 신속하고 장대하게 불통하고 혐오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불태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시대이다. 

오십 여 년 전이라 한들, 이런 것을 해피 엔딩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 서브컬쳐─여기서 쓰인 서브컬쳐란 말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일본 유래의 오타쿠 문화 내지 망가-아니메-게임 컬쳐 코드를 이르는 말이지만, 이 글에서는 본래의 뜻인 주류 문화에 포함되지 않는 파생 문화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내 인식은 이런 세계관 속에서 유래한다. 나의 인격을 구성하는 것 중 상당수가 인터넷 서브컬쳐에 기반하고 있음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이 주류 사회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바라는 감정은 있으면서도, 그것이 주류 사회에의 수용과 함께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볼 때마다 도저히 그것까지 수용하지는 못하는 지점이 수없이 있었으며, 그 지점과 지점 사이를 오가며 나는 끝없이 방황했다. 

인터넷 서브컬쳐, 그리고 그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오타쿠 문화, 그것을 향유하면서도 나날이 짙어져는 그것들의 그림자. 물론 모든 것을 수용하거나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 딱 떨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나의 기호, 혹은 성격은 그것을 또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속쓰림을 안고 고개 숙이며 걸었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 속에서 들여다 본 것 중에 꼭 나쁜 것만 있었던 건 또 아니다. 돈 받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들여가며 능력을 쥐어짜내며 창작열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었다. 텍스트로 꽁트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작고 미약한 첫 소리의 첫 소리, 그 스네어 드럼과 신스음에 맞춰 걸음마를 뗀 사람이 있었다. "아직 모르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걸음을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피워낸 세상이 있었다. 자신의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 닿았으면 싶어서,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낯선 세상에 걸어나간 사람들이 피워낸 세상이 있었다. 그것이 그림자의 이면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잘라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결벽적이고 싶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결벽적으로 구분하고 분리해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분리하고파 하는 것마저 수용하듯, 나에게 이 또한 그랬다.

 


 

나에게 초 가구야 공주!는 그 모든 것 위에 서 있다. 

인터넷 서브컬쳐는 이젠 도저히 서브컬쳐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고, 전자 통신망을 넘어 우리 유기체들의 세상에 대한 화약 냄새 나는 영향력마저 배후에서 뒷받침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것은 마냥 끔찍하고 추악한 것만 세상에 흩뿌리지 않았다. 단순한 생물과 지적 생명체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단순히 먹고 싸고 자는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 예와 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온다. 짐승의 것조차 되지 못하는 동족 간의 골육상잔도 지성의 것이라면 것이나, 또한 함께 손 잡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며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지성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태어나고 빛을 보고 성장해 꽃피운 유명 무명의 수많은 창작자들 또한 화면 너머가 아니라 우리 세상 속으로 돌아와 다시금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 이전의 모든 시대가 그랬듯, 문명의 두 얼굴이다. 인간이 문명을 일구었고 문명의 양 측면에 투쟁과 화합의 얼굴을 새긴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인터넷 서브컬쳐의 양 측면에 헤이트 컬쳐와 넷 인디의 얼굴을 새긴 것이 우리 시대인 것이다.

불타는 세상에 끝없이 장작을 던져넣은 대신 얻은 게 초 가구야 공주!라면 사실 이문이 안 맞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이 작달막한 점을 불태우는 대가로서 너무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됐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고, 우리도 내일이면 내일의 노래를 할 것이다. 그것을 다시금 확인한 것으로도 오늘의 나는 충분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