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하다. 한 걸음만 엇나가도 바로 굴러떨어질 혼돈 일보직전의 시대이다.
이 순간를 살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바로 한 달 뒤의 내가 비웃더라도 이 순간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창백하고 푸른 점 위에서 그나마도 얼마 되지도 않는 티끌만도 못한 것을 갈라먹고 있는 소위 권력자라 불리는 이들은 강대강의 치킨 게임을 이어간다. 폐허 뿐인 평화란 그나마 있지도 않고, 세상을 둘러보면 전쟁 중이거나 전쟁 직전의 험악함 뿐이다. 세상을 끝없이 갈라놓는 이런 권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그 뒤편의 민의라고 하는 것이며, 그 민의라고 하는 것은 숫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보는 시대는 증오와 분노로 움직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오십 여 년 전부터, 구리선들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작은 세상과 세상을 서로 맞잡아 이을 때, 우리는 우리가 그물망처럼 이어져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하고, 비로소 궁극의 이해와 그 너머의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오십 여 년, 통신망을 타고 자라난 것은 이해와 평화가 아니라, 더 작은 세상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라난 증오와 분노다. 더 빠르고 방대한 통신망을 통해 우리는 우리 너머의 세상에 대해 더 신속하고 장대하게 불통하고 혐오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불태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시대이다.
오십 여 년 전이라 한들, 이런 것을 해피 엔딩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 서브컬쳐─여기서 쓰인 서브컬쳐란 말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일본 유래의 오타쿠 문화 내지 망가-아니메-게임 컬쳐 코드를 이르는 말이지만, 이 글에서는 본래의 뜻인 주류 문화에 포함되지 않는 파생 문화를 지칭하는 데 쓰였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내 인식은 이런 세계관 속에서 유래한다. 나의 인격을 구성하는 것 중 상당수가 인터넷 서브컬쳐에 기반하고 있음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이 주류 사회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바라는 감정은 있으면서도, 그것이 주류 사회에의 수용과 함께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볼 때마다 도저히 그것까지 수용하지는 못하는 지점이 수없이 있었으며, 그 지점과 지점 사이를 오가며 나는 끝없이 방황했다.
인터넷 서브컬쳐, 그리고 그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오타쿠 문화, 그것을 향유하면서도 나날이 짙어져는 그것들의 그림자. 물론 모든 것을 수용하거나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 딱 떨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나의 기호, 혹은 성격은 그것을 또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속쓰림을 안고 고개 숙이며 걸었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 속에서 들여다 본 것 중에 꼭 나쁜 것만 있었던 건 또 아니다. 돈 받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들여가며 능력을 쥐어짜내며 창작열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었다. 텍스트로 꽁트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작고 미약한 첫 소리의 첫 소리, 그 스네어 드럼과 신스음에 맞춰 걸음마를 뗀 사람이 있었다. "아직 모르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걸음을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피워낸 세상이 있었다. 자신의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 닿았으면 싶어서,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생소한, 낯선 세상에 걸어나간 사람들이 피워낸 세상이 있었다. 그것이 그림자의 이면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잘라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결벽적이고 싶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결벽적으로 구분하고 분리해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분리하고파 하는 것마저 수용하듯, 나에게 이 또한 그랬다.
나에게 초 가구야 공주!는 그 모든 것 위에 서 있다.
인터넷 서브컬쳐는 이젠 도저히 서브컬쳐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고, 전자 통신망을 넘어 우리 유기체들의 세상에 대한 화약 냄새 나는 영향력마저 배후에서 뒷받침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것은 마냥 끔찍하고 추악한 것만 세상에 흩뿌리지 않았다. 단순한 생물과 지적 생명체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단순히 먹고 싸고 자는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 예와 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온다. 짐승의 것조차 되지 못하는 동족 간의 골육상잔도 지성의 것이라면 것이나, 또한 함께 손 잡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며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지성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태어나고 빛을 보고 성장해 꽃피운 유명 무명의 수많은 창작자들 또한 화면 너머가 아니라 우리 세상 속으로 돌아와 다시금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 이전의 모든 시대가 그랬듯, 문명의 두 얼굴이다. 인간이 문명을 일구었고 문명의 양 측면에 투쟁과 화합의 얼굴을 새긴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인터넷 서브컬쳐의 양 측면에 헤이트 컬쳐와 넷 인디의 얼굴을 새긴 것이 우리 시대인 것이다.
불타는 세상에 끝없이 장작을 던져넣은 대신 얻은 게 초 가구야 공주!라면 사실 이문이 안 맞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이 작달막한 점을 불태우는 대가로서 너무 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됐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고, 우리도 내일이면 내일의 노래를 할 것이다. 그것을 다시금 확인한 것으로도 오늘의 나는 충분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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